알베리오네 신부는 1884년 4월 4일 이탈리아 성로렌조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심 깊은 알베리오네를 1896년 10월 25일에 브라 신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그는 나쁘다는 생각도 없이 친구들에게서 빌려 책상 밑에 숨겨 놓고 몰래 읽은 책 때문에 브라 신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 뒤 알베리오네는 본당 신부의 배려로 1900년 10월에 알바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여기서 그는 영적지도자인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를 만나 그를 사제의 모범으로 삼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그의 지도를 따랐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옮겨지는 역사적인 밤에 결정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이날 알바 대성당 제대에는 성체가 현시되었고, 모든 신학생들에게는 특별히 철야기도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 속에서 알베리오네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과 당시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토니올로씨의 강연을 묵상하면서 성체로부터 특별한 빛을 받고 "새로운 세기의 사람들과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처음에 평신도 조직을 구상했으나 후에 작가, 기술자, 전파자가 수도자들인 수도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1907년 6월 29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1908년 박사학위 과정을 밟은 다음 알바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강의하면서 영성지도 신부도 겸직하였다. 그리고 1913년 9월 8일 그는 알바 교구의 주간지 "가제타 알바"의 편집을 맡게 되면서 그토록 염원하던 첫 걸음을 시작했다. 그 다음 해인 1914년 8월 20일에 알바에서 전세집을 빌려 '작은 노동자 인쇄학교'를 시작함으로써 성바오로수도회를 창립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는 대수도회 총장들과 함께 알베리오네 신부도 초청을 받았다. 이 공의회에서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이 발표되었는데 이 교령은 바로 알베리오네 신부가 그동안 전 생애를 바쳐 투신한 사회홍보수단 사도직을 교회가 인증하는 중대한 교령이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69년에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시대적 요청을 알아듣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현대 문명이 제공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신속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덕으로 이끌기 위하여 출판뿐 아니라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레코드 등 당대의 모든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하였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주어지는 새로운 매체를 복음 전파에 이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성은 사도 바오로의 영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살고 전하는 것,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섬기고 선포하는 것이 알베리오네 영성의 초석을 이룬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도 바오로처럼 열정적인 선교사요 저술가였으며 동시에 깊은 영성가요 관상가였다. 1971년 선종할 때까지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기도를 바쳤던 그는 "기도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지 않는 사람은 수도자라 불릴 자격이 없으며 사실 수도자도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사도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성덕이 어떤 다른 사제나 수도자보다도 훨씬 뛰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들에게 천사들까지도 시기할만한 '훌륭한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사도직'을 무상으로 주셨고, 한 사람의 훌륭한 신문기자는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하느님 앞에서 결정했고 결정한 일은 미루지 않고 실천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하느님 말씀을 어딘가에 묶어두기를 원치 않았다. 하느님 말씀은 세상 끝까지 모든 이에게 자유롭게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도 성바오로와 같은 왕성한 활동력으로 시대의 미래를 바라본 예언자적인 삶을 살다가 1971년 11월 26일 87년간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성바오로수도회 모원의 ‘사도의 모후 성당’의 지하 묘소에 안치되었다. 2003년 4월 2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복자품에 올랐고, '인터넷의 주보성인'으로 결정됨으로써 미디어 사도직을 위해 천상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그분이 운명 직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의 조그마한 거실을 방문하시고 교황 강복을 내리셨다. 그것은 운명하기 한 시간 전의 일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교황께서 그분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존경이 아닐 수 없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본래 허약하여 자주 병석에 누워야만 하면서도 87년간이나 살 수가 있었다. 1884년에 태어나 1971년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병약한 몸으로 많은 일을 해 나가실 수 있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일을 하셨다는 표지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