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는 새 시대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새로운 사도의 필요성을 느껴 성바오로 사도의 보호 아래 성바오로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는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밤(1900년 12월 31일과 1901년 1월 1일을 잇는 밤)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날 교회는 교황 레오 13세의 권고에 따라 성체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알바 대성당(이탈리아 알바 교구)은 군중으로 가득하였으며, 그들 사이에 신학생이었던 알베리오네도 있었다. 알베리오네는 그날 밤 성체조배를 하면서 성바오로수도회의 특수한 정신과 사명 그리고 성바오로수도회를 끝까지 이끌고 나갈 소명을 부여 받았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에 투철한 사명을 가지고 악덕 출판물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부도덕적이고 무신론적인 방송이나 출판에는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방송과 출판으로 맞서고, 사회를 타락케 하는 비도덕적인 조직 역시 신앙과 도덕으로 무장한 강력한 조직으로 맞서 복음을 널리 전하는 것이었다.
성바오로수도회는 1914년 8월 20일에 이탈리아의 알바에서 '작은 노동자 인쇄학교'로 역사적인 첫 걸음을 시작하였다. 1921년 10월 5일에 설립자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탈리아 알바 교구장 프란치스코 레 주교의 집전으로 종신서원을 발했으며 함께 생활하던 15명의 젊은이들은 유기서원을 발했다. 그러나 아직 수도회가 교회 인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공적 서원은 아니었다. 1927년 3월 2일 교구장 프란치스코 레 주교는 교구차원의 수도회로 승격하였다.
1926년 1월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쟈카르도 신부(성바오로수도회의 첫 번째 사제)를 로마에 파견하여 분원을 설립케 하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에 알베리오네 역시 로마로 옮겨 왔으며 1949년 6월 27일에 교황청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았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던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 즉,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많은 오해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복음선포를 위해서 그 수단들을 사용한 것이다.